책소개
셸링의 전기 철학에서 세계는 절대자가 자기 스스로를 전개한 것으로서 빈틈없이 짜인 훌륭한 체계를 갖춘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런데 현실 세계의 실제 모습은 그러한가? 또 세계가 절대자의 자기 전개라면 자신의 근원을 절대자에게 두고 있는 존재인 인간은 절대자에 의해 이미 규정된 존재로 인간의 자유란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 악의 근원도 절대자 자신인가? 우리의 의지는 또 어떠한가?
이 책에서 셸링은 실재의 관점에서 보면 나뉘어져 있는 것들을 안으로 모아 ‘근거’를 찾아 들어가는 방식을 통해 심층 구조 체계를 논하면서 그 구조 속에서 자유가 드러나는 지점을 포착해 보고, 그와 동시에 드러나는 인간의 존재 지점을 점검한다. 이 과정에서 자유가 “선을 행할 수도 있고 악을 행할 수도 있는 능력”임을 도출한다.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생겨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인간은 어떻게 그리고 왜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자유로운 행위를 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등이 여기서 다루는 중심 문제다.
자기 본질의 필연성에 따라서 자유를 누리는 인간은, 세계 전체 안에서 단지 부분적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존재와 달리 세계 전체를 열어 보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선과 악을 행하는 능력으로서의 자유를 통해 인간은 세계 자체의 자기 분리와 통합의 원리를 스스로의 결단을 통해 드러낸다. 필연성과 하나 된 자유를 통해 인간은 세계 전체를 열어 보이며 동시에 그 열린 전체 속에서 전체와 화합하며 하나가 된다.
200자평
하이데거가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함께 독일 관념론의 두 정점으로 평가한 책이다. 자유론의 백미로, 절대자(신)의 자기 이분화, 악의 가능성과 현실성, 절대자의 자기계시 등을 논의한다. 고전적 목적론적 자유 이론의 전형을 살펴보고 자유에 대해 다시 생각하면서, 방향성 없이 떠도는 현시대의 맹목적 표피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고, 인간의 ‘인간임’에 대해 반성할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
프리드리히 셸링은 독일 뷔르템베르크의 레온베르크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5세에 튀빙겐대학교에 입학해 헤겔과 횔덜린을 사귀었다. 17세 때 원죄에 관한 내용으로 학위논문을 썼으며, 1793년부터 지속적으로 철학 논문들을 발표해 독일 철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초기 글에서는 피히테의 영향이 많이 보이지만, 1797년에 발표한 ≪자연철학에 대한 이념≫부터는 자신만의 고유한 철학 세계를 펼쳐 나가기 시작한다. 1798년 괴테의 추천으로 예나대학교의 교수로 초빙된다. 셸링은 그곳에서 괴테, 실러, 슐레겔 등 독일 낭만파 작가들과 사귀었으며, A. W. 슐레겔의 아내인 카롤리네 슐레겔을 만났다. 그녀는 1803년에 이혼하고 셸링과 결혼했다.
1802년과 1803년에 셸링은 헤겔과 함께 ≪철학 비판지(Kritisches Journal der Philosophie)≫를 제작했다. 헤겔은 그보다 다섯 살 위였지만 그를 친구이자 스승처럼 생각했고, 헤겔의 첫 번째 저술도 ≪피히테의 철학 체계와 셸링의 철학 체계의 차이≫(1801)다. 그러나 튀빙겐대학교에서부터 맺어 온 셸링과 헤겔의 우정은 헤겔이 ≪정신현상학≫(1807)을 발표한 뒤 깨진다.
셸링은 1803년 뷔르츠부르크대학교로 자리를 옮겼고, 1806년에는 뮌헨으로 가서 바이에른 학술원 회원과 미술대학 사무총장을 지내게 된다. 에를랑겐대학교에서도 강의했으며, 1827년에는 뮌헨대학교 교수직을 맡고 미술대학 학장도 지내게 된다. 1841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베를린대학교로 셸링을 초빙했으며, 그는 그곳에서 1846년까지 교수직을 수행했다. 베를린에서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 중에는 나중에 유명해진 사람이 많았는데, 그중에는 키르케고르, 엥겔스, 부르크하르트, 바쿠닌도 있었다.
대표작으로는 ≪자연철학에 대한 이념≫(1797), ≪자연철학의 체계에 대한 첫 번째 기획≫(1799), ≪선험적 관념론의 체계≫(1800), ≪대학 수업 방법에 관한 강의≫(1803), ≪인간 자유의 본질에 관한 철학적 탐구≫(1809), 사후 출간된 ≪예술철학≫(1859), ≪신화 철학≫(1856), ≪계시 철학≫(1861) 등이 있다.
옮긴이
김혜숙은 건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화여자대학교, 인천교육대학교, 아주대학교, 상명대학교, 건국대학교 등에서 강의했으며, 저서로는 ≪셸링의 예술철학≫, ≪논리학의 이해≫, 역서로는 ≪인간의 이해력에 관한 탐구≫, ≪선험적 관념론의 체계≫, ≪인간 자유의 본질에 관한 철학적 탐구≫, ≪예술철학≫논문으로는 <셸링의 예술철학에 관한 존재론적 연구>, <셸링 자연철학에 있어서의 주관의 자기 전개>, <셸링의 예술철학에 대한 연구>, <셸링과 근대 합리론>, <셸링 사유에 있어서의 자유의 가능성으로서의 선과 악의 가능성에 관한 고찰> 등이 있다.
차례
서문
인간 자유의 본질에 관한 철학적 탐구
찾아보기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자유를 일단 철학에서 유일한 것으로 그리고 철학의 모든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생각은 단지 자기 자신과만 연관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 생각은 인간 정신 일반을 해방시켰고, 학문의 세세한 모든 영역을 이전에 있었던 그 어떤 것보다 더 많이 변화시켜 주었다.
-40쪽
신 안에서는 분열 불가능한 통일성이 인간 안에서는 분열 가능한 것이어야만 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선과 악의 가능성이다.
-67쪽
악은 언제 끝나며, 끝낼 방법은 무엇인가? 창조는 도대체 궁극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만일 궁극목적이 있다면 왜 곧바로 달성되지 않는가? 왜 처음부터 한결같이 완전한 것만 있으면 안 되는가? 여기에 대한 답은 이미 제시된 것 외에 다른 것이 없다. 왜냐하면 신은 생(Leben)이고, 그저 단순하게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생은 운명을 가지고 있고, 또 역경과 생성에 종속된다.
-144쪽